결론부터: 공급 계획은 나왔지만, 전세난을 바로 풀 수준은 아닙니다
정부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빈 상가, 오피스, 지식산업센터를 매입해 주택으로 리모델링하고, 이를 통해 2,000호 규모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방식은 사업성과 건축 규제를 동시에 넘어야 해서, 계획대로 물량이 빠르게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독자가 먼저 볼 지점은 “정책이 발표됐느냐”가 아니라 어떤 건물이 실제로 대상이 되는지, 주차장과 복도 폭 같은 기준을 맞출 수 있는지, 그리고 매입 가격이 사업성을 깎아먹지 않는지입니다. 특히 서울·경기도 규제지역 중에서도 입지가 좋은 곳만 고르겠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아무 공실이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왜 2020년에도 실패했나: 호텔은 쉬워도, 상가·오피스는 훨씬 어렵습니다
비주택을 주택으로 바꾸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2025년까지 4만호 넘는 공급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로 주거용 전환은 1300호도 안 됐습니다. 목표 대비 성과가 매우 낮았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건물을 바꾸는 데 드는 돈과 시간이 예상보다 컸고, 건축 기준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호텔 수요가 급감하면서 호텔을 원룸형 주택으로 전환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호텔은 구조상 상대적으로 전환이 쉬운 편이지만, 그 경우에도 복도 폭, 피난 동선, 비상계단 같은 기준을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숙박시설은 복도 폭이 1.5m면 되는 경우가 있어도, 오피스텔은 양옆에 호실이 있으면 1.8m가 필요합니다. 벽을 뒤로 밀어야 하는데 내력벽이면 구조적으로 손대기 어렵고 공사비도 커집니다.
주거용 건물은 피난 기준도 더 까다롭습니다. 거실에서 피난계단까지 거리가 30~50m 이내여야 하는데, 호텔처럼 복도 끝에 계단이 있는 구조는 이를 맞추기 힘들 수 있습니다. 결국 계단을 새로 만들거나, 복도와 벽 구조를 바꾸는 추가 공사가 필요해집니다. 이런 조건이 겹치면 “공실을 주택으로 바꾸는 게 더 싸고 빠르다”는 기대가 깨집니다.
이번에 가장 중요한 비교: 정부가 싸게 사야 하고, 지주는 비싸게 팔려 합니다
이번 사업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동시에 맞아야 합니다. 첫째는 토지와 건물을 저렴하게 확보하는 것, 둘째는 건축법과 주차장·피난 규제를 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둘이 모두 어렵습니다.
LH는 시중에서 매입 대상을 찾고, 감정평가를 거쳐 가격을 정합니다. 보도자료에서도 “비주택 건축물의 매입 가격은 용도 변경 전 기준 시세를 고려해 감평 가격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쉽게 말해, 정부는 시세보다 높게 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토지주나 건물주는 도심 입지 좋은 자산이라면 땅값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싸게 넘길 이유가 적습니다.
시장 계산도 녹록지 않습니다. 기사 속 예시처럼 서울 2종 지구에 땅 100평, 연면적 200평의 상가가 있고 원룸 15세대 정도로 바꿀 수 있다고 가정하면, 서울 시내 원룸 시세가 평균 3억원일 때 총 45억원 수준의 임대주택 가치가 나옵니다. 여기에 리모델링 비용이 평당 500만원이면 총 10억원이 추가됩니다. 그러면 남는 토지비 여력이 줄어들고, 토지주는 평당 3500만원 수준에 팔 동기가 약해집니다. 즉, 정부가 원하는 가격과 민간이 원하는 가격 사이의 간격이 큽니다.
지식산업센터는 공급 잠재력은 크지만, 실제로는 주차장이 걸림돌입니다
공실 지식산업센터도 전환 대상에 포함됩니다. 단지에 따라 공실률이 20~30% 수준인 곳도 있고, 70~80% 이상 비어 있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서울의 공실 지식산업센터를 주거로 바꾸면 1만 세대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숫자만큼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지식산업센터는 주거시설보다 주차 기준이 느슨한 편이라, 주거용으로 바꾸려면 주차 면수 추가 확보가 필요합니다. 부지 안에 추가 면수를 넣을 공간이 없으면 용도 변경이 막힐 수 있습니다. 게다가 건물 전체 용도 변경이나 공용부분 손질에는 80% 이상 동의가 필요합니다. 수분양자가 많고 이해관계도 제각각이라, 동의 확보 자체가 또 다른 허들입니다.
지금 확인할 체크포인트: 무엇을 보면 이 사업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나
이 정책을 볼 때는 기대감보다 조건을 따져봐야 합니다. 특히 아래 항목이 핵심입니다.
- 입지: 서울과 경기도 규제지역 중에서도 도심 접근성이 좋은 곳인지
- 건물 유형: 호텔처럼 전환이 쉬운 구조인지, 상가·오피스·지산처럼 전면 공사가 필요한지
- 주차장: 기존 면수로 주거 기준을 맞출 수 있는지
- 복도·계단: 복도 폭, 피난계단, 방화구획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
- 매입 가격: LH 감정평가 기준에서 사업성이 남는지
- 동의율: 지식산업센터처럼 80% 이상 동의가 필요한지
요약하면, 이번 대책은 공실 해소와 주거 공급 확대라는 방향은 분명하지만, 실제로 빠르게 물량이 나오려면 가격 협상과 규제 완화가 함께 가야 합니다. 2020년처럼 목표만 크고 실적이 적은 결과를 피하려면,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기준을 풀고 얼마나 싸게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Q. 빈 상가나 오피스면 무조건 주택으로 바뀌나요?
아닙니다. 입지, 주차장, 복도 폭, 피난 동선, 방화구획 등 건축 기준을 맞춰야 하고, 사업성이 나와야 합니다.
Q. 왜 호텔보다 상가·오피스가 더 어렵다고 하나요?
호텔은 객실이 이미 구분돼 있어 전환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반면 상가·오피스는 바닥, 배관, 화장실, 주차장 등 손볼 곳이 많아 공사비가 커집니다.
Q. 지식산업센터는 물량이 많으면 바로 공급이 늘어날까요?
공실이 많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주차장 추가 확보와 80% 이상 동의가 필요해 실제 전환 속도는 느릴 수 있습니다.
Q. 이번 대책은 지금 바로 전세난 체감에 영향을 줄까요?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매입 협상, 설계 변경, 인허가, 공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Q.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나요?
미국은 오피스→주거 전환이 활발합니다. 특히 뉴욕은 2023~24년 규제를 크게 완화하고, 일정 비율의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면 약 30년간 재산세를 10~90% 감면하는 등 인센티브를 줬습니다. 다만 한국은 제도와 시장 구조가 달라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이슈는 “공실을 주택으로 바꾸면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에 사서 얼마나 고치고 어떤 기준을 맞출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전세·월세 부담이 큰 시점일수록, 정책 발표 자체보다 실제 공급 가능 물량과 지역별 적용 가능성을 먼저 따져보는 편이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