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피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장기화,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침략으로 인해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였고, 이제는 소비자 물가까지 고공행진 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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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역사, ‘미시시피 거품 경제사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전 글에서 알아보았던 튤립 파동과 더불어 역사적인 경제위기 사건으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과거를 알아야 미래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인플레이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빚더미에 앉은 프랑스, 그 원인은?

1715년, 루이 15세가 즉위했을 때에 프랑스는 빚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이는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하면서 막대한 돈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 비용으로 국가 재정을 거의 파산 상태로 몰아넣었기 때문인데요.

 

이에 프랑스의 채무는 무려 30억 리브르에 달했으며, 그에 비하여 연간 재정 수입은 1억 4,500만 리브르에 불과하였지요. 뿐만 아니라 지출은 1억 4,200만 리브르로, 남은 돈으로는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구원자 존 로? 지폐 발행으로 경제 호황

루이 15세는 겨우 13세의 나이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오플레앙 공작 필리프 2세가 섭정을 맡으며 채무를 해결할 방법을 우선적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이 때 그와 친분이 있던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존 로가 한 가지 의견을 제시하였는데요. 국가가 보장하는 지폐를 발행하면 채무를 없앨 수 있다는 의견이었지요.

 

지금이야 지폐 사용이 당연하지만, 18세기까지는 금과 은 등의 금속화폐만 사용되었습니다. 존 로는 이러한 금속화폐와 달리 지폐는 원하는 만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채무를 해소할 수 있다고 필리프 2세를 설득하였습니다.

 

1716년, 결국 존 로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프랑스 최초의 은행인 방크 제네랄 프리베가 설립됩니다. 프랑스는 세금을 지폐로만 납부하도록 하여 지폐를 통용시켰는데요. 결과적으로 이 방법은 대성공을 거두어 프랑스 경제가 호황에 들어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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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는 외국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재무총감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가 살인 전과까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신분 상승이었지요. 하지만 존 로는 재무총감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더 큰 성공을 바라보았습니다.

존 로, 미시시피 회사 설립! 프랑스 채무 없애나?

존 로는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루이지애나에 식민지를 경영하는 회사를 차려 주식 공모로 국가 채무를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필리프 2세는 그의 아이디어였던 지폐 발행이 크게 성공하자 신뢰하고 있었기에, 존 로는 쉽게 루이지애나에 대한 독점 개발권과 교역원을 보유한 미시시피 회사를 넘겨 받았습니다.

*미시시피 회사 이름의 유래

프랑스 탐험가들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멕시코 만까지 내려와 루이 14세의 땅이라는 의미로 ‘루이지앵’이라 이름 불렀고, 이후 미국에 넘어가면서 루이지애나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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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회사의 수익은 많지 않았지만, 존 로는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몇 가지 술수를 썼습니다. 죄수와 독일계 이민자를 풀어 루이지애나의 인구를 두 배로 늘렸으며, 사람들을 모아 광부 복장을 하게 하고 파리 시내를 행진하였지요. 이로써 식민지 광산 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 것인데요. 더불어 식민지 금광 개발에 대한 소문까지 퍼지면서 미시시피 회사의 가치가 치솟게 됩니다.

 

1719년, 존 로는 프랑스의 채무를 모두 미시시피 회사가 인수하도록 조치하고, 채무를 갚기 위해 대대적으로 주식 공모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은행은 미시시피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었지요. 프랑스 정부의 지지를 받는 존 로의 회사였고, 금광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3만이 넘는 사람들이 투자를 위해 파리를 찾았습니다. 덕분에 500 리브르였던 주가가 2만 리브르로 치솟았으며, 그의 계획대로 프랑스 정부의 채무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너도나도 주식 투자, 하룻밤에 백만장자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너도나도 주식 투자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인과 귀족은 물론 청소부에서 웨이터까지 투자를 시작했는데요. 파리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주식 거래 판이 만들어졌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주식으로 수천만 리브르를 벌었습니다.

 

어느 시종이 주인의 심부름으로 주식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웃돈을 주고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차액을 얻고, 그 돈으로 주식 매매에 성공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돌았지요.

꺼진 거품, 피해자는 누구인가?

그러나 거품은 꺼지기 마련입니다. 프랑스 정부가 지폐를 다량으로 찍어내면서 지폐의 가치가 하락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빵과 우유 등의 식량 가격은 6배나 상승하였고, 옷 가격도 3배나 올랐는데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금광 산업에 대한 의구심이 점차 확산되면서 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콩티 왕자가 미시시피 주식을 처분하고 금과 은으로 바꾸었다는 소문이었지요. 이에 주식을 금으로 바꾸는 열풍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금의 수량은 제한되어 있었기에 은행 금고는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예금 지급까지 거절하는 수준까지 오게 되었고, 결국 미시시피 회사까지 파산하며 막대한 손해는 모두 투자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인플레이션  [경제사건] 6월, 역사 속의 인플레이션 ‘미시시피 거품’ 0613 04

1720년 6월, 프랑스는 미시시피 회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외국인이었던 존 로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버립니다. 그는 베네치아로 도망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가 떠난 후에도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쉽게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국가 채무는 해결되었으나 물가가 계속해서 폭등하면서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지요. 재무총감이 세금제도를 개혁하여 재정난을 해소하려 했지만, 귀족층에 의해 무산되면서 계급 간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결국 프랑스 혁명까지 일어났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루이지애나 땅을 쓸모 없다고 생각하여 미국에 넘기는 결과까지 초래하지요.

 

또 다른 후유증으로는 방크(bank)를 은행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게된 것인데요. 지금까지도 국립은행을 제외하고는 societe(회사)나 credit(신용)이 그 이름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시시피 버블 사건은 21세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역사 속의 인플레이션, 미시시피 버블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인플레이션이 화두가 되는 요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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