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나가는 기술력은 물론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기대를 한껏 받는 ‘애플’은 누구나 아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좁은 창고에서부터 시작하였는데요. 오늘 비저널에서는 애플의 시작과 성장의 원동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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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어떤 사람일까?

애플의 창업과 관련하여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비범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전자공학과 관련된 환경에서 자랐는데요.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중고차를 구매한 후 수리하여 재판매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기계에 대한 열정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했고, 덕분에 잡스는 처음으로 전자공학을 접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열 살 무렵에는 미국의 첨단 벤처 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 밸리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엔지니어인 이웃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전자공학에 대한 흥미를 키워갔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여서는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났고, 함께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맥콜럼의 전자공학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전자공학과 관련된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견학을 하면서 현장 경험을 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괴짜들의 캠퍼스라고 평가된 리드칼리지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지만, 중퇴한 이후 비디오게임 개발 회사인 아타리에 취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HP의 직원이 된 스티브 워즈니악과 컴퓨터 클럽에서 의견을 나누며 함께 창업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는데요. 이것이 바로 애플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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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서 시작된 애플, 그 시작은?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허름한 창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며 창업을 꿈꾸었습니다. 그들은 판매망을 수소문하다가 바이트샵이라는 컴퓨터 매장에 시험 모델을 보여주고 50대의 납품 주문을 받을 수 있었지요. 문제는 30일안에 50대를 납품해야 했기에 컴퓨터를 생산할 자본금이 부족했던 것인데요. 이에 잡스는 아타리의 기술자 론 웨인에게 투자금과 기술 고문을 요청하며 주식 지분 10%를 제안하였습니다.

 

이렇게 웨인까지 합류하여 1976년 4월 1일에 정식으로 애플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애플I가 바이트샵에서 666달러로 판매되기 시작하였지요. 호기있게 시작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초반 판매량은 매우 적었습니다. 결국 웨인은 애플 설립 11일 만에 주식 지분을 포기하고 800달러를 받고 회사를 떠나버렸지요.

 

그러나 곧 두 달이 지나자 상황이 반전되었습니다. 애플I가 입소문을 타 인기를 끈 것입니다. 애플I는 10개월 동안 200여대가 판매되었고, 잡스와 워즈니악은 8,000달러의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인텔에서 근무했던 마케팅 전문가 마이크 마큘라를 설득하여 92,000달러의 투자를 받고, 애플II를 개발하였습니다. 애플II의 가격은 1,298달러로 이전 제품보다는 높은 가격이지만 당시 일반적인 컴퓨터 가격에 비해서는 저렴한 가격이었는데요. 이 애플II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1993년까지 500만 대가 판매되었습니다.

 

애플은 시장의 반응에 힘입어 1980년에는 주식시장에 상장하였고, 잡스와 워즈니악 그리고 마큘라는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글로벌 기업이 그러하듯 애플에도 위기는 찾아왔습니다.

애플의 몰락, 뭐가 문제였을까?

애플II의 인기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당연히 세계 최대 컴퓨터 업체인 IBM도 시장에 진출하였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애플은 애플III를 개발하여 1980년도에 출시하였는데요. 급하게 만들어진 애플III는 오류를 일으키기 일쑤였고, 내부발열도 심해 자주 고장이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렴해서 인기를 끌었던 애플II와 달리 가격이 비싸다는 점에서도 외면받았습니다. 애플 III의 가격은 기본형이 4,000달러, 고급형이 7,800달러로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요. 결국 애플III의 판매량은 5만대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고장으로 인해 상당한 물량이 리콜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잡스의 딸 이름을 딴 ‘리사’라는 컴퓨터를 개발하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었습니다. 리사는 개인용 컴퓨터 최초로 GUI 운영체제를 탑재하였지만, 이를 구동하기에 CPU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입니다. 가격도 1만 달러에 달하여 판매량이 저조할 수 밖에 없었지요.

 

애플은 새로운 경영자가 필요하다 느꼈고, 팹시콜라 출신의 존 스컬리를 CEO로 영입하였습니다. 이후 스티브 잡스는 잇단 경영실패와 판매 부진을 책임지고 애플에서 물러났는데요. 존 스컬리 또한 애플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는 필기가 가능한 휴대용 단말기인 뉴턴을 출시하였으나, 시장은 아직 휴대용 단말기에 대해 익숙지 않았고 가격도 1,000달러로 비쌌습니다. 이 실패로 인해 존 스컬리가 물러나고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자리를 넘겨받았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스핀들러가 영입된 이후에도 애플의 경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996년에는 6,9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고 매각설까지 일어났는데요. 이러한 애플을 구원한 것은 애플을 떠났었던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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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구원투수, 역사의 시작

이어지는 실패에 애플은 잡스의 경영능력과, 그가 운영하던 넥스트 사의 ‘넥스트스텝’ 운영체제가 필요해졌습니다. 이에 1996년, 애플은 넥스트사를 인수하고 잡스를 복귀시켰는데요. 복귀후 잡스는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맥북, 아이맥 시리즈 등을 연이어 개발하여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리고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공개하며 애플은 전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잡스가 개발한 혁신적인 제품들은 성능은 물론이고 디자인 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애플만의 감성과 디자인은 소비자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오늘날의 애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좁은 창고에서 시작하여 40여년 만에 전 세계적인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지요.

이처럼 우리가 아는 그 애플도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수많은 역경을 겪었습니다. 항상 올바른 선택만을 한 것이 아니었지요. 한 때 시장의 냉대도 받았고, 실수를 거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실수를 인정하고 돌파구를 찾아 계속해서 도전하였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과 함께 CEO와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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