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능력주의는 공정에 대한 시대적 요청으로 화두가 됐습니다. 우리나라가 능력주의 아래 움직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간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와 공정성을 돌아보는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공정한 사회를 위해 더 엄밀히 능력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하는데요. 능력주의와 공정성을 두고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능력주의와 공정성의 소환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2014년 정유라 페이스북 글 일부

오늘날 능력주의를 두고 공정이 소환되는 데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정당한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특권에 기대 저지른 부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정유라 사건,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 조국 사태, 나경원 자식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하죠. 일부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기득권을 이용해 사회적 지위 획득에 개입했다는 논란은 현 사회 능력주의의 공정성에 물음을 던졌습니다.

 

능력주의를 근거로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 일명 ‘인국공’ 사태인데요.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일부에 대해 정규직 고용 전환 의사를 밝혔다가 정규직 노조 및 취준생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산 사건입니다.

 

반발의 요점은 시험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아야 정규직이라는 안정적 노동 조건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애써 시험 치르고 들어오는 정규직에겐 불공정한 처사라는 거죠. 그러나 그간 현장에서 일한 경험 역시 마땅히 인정받을 노력이고 능력이라는 의견이 맞섰습니다. 지금도 갈등은 완전히 봉합되지 못한 상태인데요. 이처럼 능력을 둘러싼 공정성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 중요히 떠오르는 동시에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능력주의가 공정하려면

능력주의는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 중 하나입니다. 재화가 한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두루 배분하는 일이기에 능력주의는 공정성을 전제로 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의 추천 글을 쓴 문용린 서울대 명예교수는 능력주의 신화가 다음 세 가지 명제로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며,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

<능력주의는 허구다>의 저자인 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는 능력주의의 논리에 대해 이렇게 정리합니다.

누구에게도 차별적 특혜를 주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며, 타고난 계층 배경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결국 능력주의가 공정하게 작동하기 위한 핵심은 기회의 공평한 제공과 ‘능력’에 따른 보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담 과연 기회는 공평히 제공되는지, 능력에 따른 보상의 형평성은 어떤지 살펴볼까요.

능력이라는 필터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함을 의미합니다. ‘스타트 라인’이 같냐는 거죠.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은 각자 축적한 부에 따라 다릅니다. 가정환경이나 재정에 따라 좋은 학군에서 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공부에 전념할 수도 있고 일과 병행해야 할 수도 있죠. 결국 같은 능력(노력)을 기울여도 성취는 차이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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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신분제 사회와 달리 계층 이동성은 열려 있지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계층과 지위가 세습되는 점은 유사합니다. 인생의 출발점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그만큼 개인의 능력이 이를 상회하기란 쉽지 않죠.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 입학 신입생의 62.9%는 소득분위 9분위 이상 고소득 가정이 차지한 바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환경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죠.

성공은 (개인) 능력만으로 이뤄지나

명문대에 입학할 정도로 뛰어난 학업 성취를 이루려면 분명 본인의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사례처럼 사교육의 기회나 물질적 뒷받침 등 역시 큰 영향을 미칩니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지능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명문대에 입학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그 결과를 오롯이 개인의 노력 결과로 환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꼭 학업뿐만은 아닙니다.

 

능력 외 요인들, 타고나거나 우연적이거나

성공은 능력만이 아니라 우연한 요소, ‘운’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최종적으로 무얼 갖느냐의 문제에서 능력은 수많은 영향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능력과는 상관없는 ‘비능력적’ 요인들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 능력적 요인(merit factor): 타고난 재능, 성실함, 올바른 태도, 자질 등
  • 비능력적 요인(nonmerit factor): 부모의 재화,사회·문화적 배경 및 자본, 우수한 교육의 제공 여부, 갖가지 운, 사회적 제도, 태어난 시기 등

 

개인이 어찌할 수 없거나

이들은 능력과 공존하면서 능력이 미치는 영향력을 약화시키거나 아예 억압하기도 합니다. 부모로부터 지원받는 부나 교육, 문화적 환경 등이 개인 능력의 영향력을 줄인다면, 당대 사회가 지닌 구조나 특징에 따라 능력의 평가나 발휘도 달라지죠. 능력 역시 사회적 뒷받침 아래 발현되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마치 비인기 종목 선수가 인기 종목 선수 이상으로 노력해도 사회적 보상이 적은 것처럼요. 또한 대기업 중심 경제 시스템에서 자영업자가 자수성가하기 힘든 것처럼 개인을 압도하는 비능력적 요인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능력에서 배제되거나

차별의 문제도 있습니다. 차별은 위에서 언급한 비능력적 요인, 대개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속성을 근거로 교육이나 일자리와 같은 사회적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별, 계급, 인종, 국적, 나이, 장애, 질병 등에 따라 ‘능력 있음’과 ‘능력 없음’을 규정하고 개인의 권리와 실존을 제약하기도 하죠.

 

무서운 것은 차별의 반복이 가져오는 효과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차별이 고착화될수록 그 정도는 심해지고 불평등은 심해집니다. 차별 때문에 능력을 발현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은 결국 정말로 능력이 저해되고 사회적 보상에서 멀어지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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