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능력에 따른 보상과 위계에 대한 긍정은 현대인의 사고를 지배하는 이념입니다. 현대사회를 구성하고 작동하는 체계이기도 합니다. 능력주의가 어떤 식으로 오늘날 개인과 사회를 움직이는지 살펴봅니다.

능력이라는 자격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거세졌지만 일상에선 여전히 능력주의를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지적되는 문제의 타당성과는 별도로 신자유주의라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여 온 이상 불가피한 생존 양식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 속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커뮤니케이션 양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와 공정성 논쟁에 불을 지핀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를 정리한 바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현대사회에서 ‘능력’은 곧 개인의 자격이자 실존의 근거라는 겁니다.

 

능력주의를 근간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른 재화의 차등 배분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가 누리는 재화는 그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정당성을 보장받습니다. 여기에는 그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 역시 계산에 들어가죠. 성공은 능력과 노력으로 쟁취한 불가침의 보상이 됩니다. 성공하지 못한 이에게도 같은 필터가 적용됩니다. 능력과 노력이 부족했으니 처한 상황이나 결과는 마땅합니다.

 

성공에 대한 자극이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이가 그렇지 못한 이를 업신여기는 상황을 낳을 수 있으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가 ‘누구 탓을 하겠어, 내가 못나서 그런 건데’라는 식으로 자조와 절망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계급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죠.

능력주의의 쓰임 61117074e9331d87c2ab3eec  EA B0 80 EB A1 9C 20 EC 9D B8 ED 8F AC 2 20 16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고 로널드 레이건(좌).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했지만 사회적 약자층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있다. 우측은 1980년 미 대선 당시 레이건 측 캠페인 슬로건.

개인의 능력은 국가 정책적으로 복지의 대상을 구분하는 명제로도 쓰였습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와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본격 수용된 신자유주의는 이런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시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경쟁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사상입니다.

“우리는 그 자신의 실수가 아닌 일로 힘겨워하는 사람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

당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습니다. 요지는 ‘국가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입니다. 레이건을 비롯해 신자유주의가 채택한 복지의 대상은 ‘그 자신의 실수가 아닌’ 사람입니다. 자기 책임이라 할 수 없는 불운에 대해선 도움을 줘야 하지만, 책임이 있다면 복지로 구제할 수 없다는 거죠. 기회와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은 이후에도 거의 유사하게 강조됩니다.

체제 정당성과 자발적 수용의 헤게모니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는 매우 독특한 체제입니다. 능력주의가 지배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면서 대중의 공정성 요구에도 소환됩니다. 능력에 따른 것이라면 상위층의 세습이나 지위도 긍정합니다. 기회의 평등을 약속한다면 현실의 불평등도 옹호합니다. 사회 주요 계층과 대중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입니다.

 

과거 귀족정이나 신분제 사회에서 사회적 재화, 기회, 통치이념 등은 모두 신분이나 혈연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들이 국가 살림을 이끈다는 사회적 책임 아래 수행됐지만 불공평은 드러나 있었습니다. 지배층과 대중의 이해관계는 달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능력주의 아래 주요 계층은 정당성을 인정받고 대중은 양극화를 받아들입니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가 운영되는 겁니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사용해 주목받은 ‘헤게모니’ 개념입니다.

헤게모니(Hegemony): 사회 주요 집단의 적극적인 합의와 동의를 통해 얻어진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지도력. 또는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에 의한 주도권.

신자유주의 이전 시점이긴 하지만, 그람시(1891~1937)는 자본주의 국가의 운영 방정식에 이제까지와 다른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까지 지배와 피지배의 공식은 지배자의 일방적 억압이었습니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피지배계층의 반발은 한정적인 수준에 그쳤죠.

 

그람시는 더 이상 지배 집단이 강압적인 수단으로 체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가끔 호혜적으로 ‘당근’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체제의 정당성을 피지배자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거죠. 헤게모니는 구성원의 동의에 의한 지배체제입니다. 문화적 틀인 아비투스(Habitus)와 교육 체계가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 요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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