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공정성을 중심으로 한 능력주의 논쟁은 근래 달아오른 이슈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사회적 인정과 보상의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은 것은 훨씬 이전의 일입니다. ‘능력’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추구해 온 가치기도 합니다. 적극적인 능력의 발현은 인간의 사명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능력주의’라는 이념의 정당성과 당위를 보증하는 한 축으로도 존재하죠. 사회적 이념으로써 능력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그리고 인류사 속에서 ‘능력’은 어떤 가치였는지 살펴봅니다.

이데올로기의 변화

능력주의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이야기할 때 비교군으로 쉽게 떠올리는 것은 과거 봉건 사회입니다. 신분제, 귀족정에 따라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도 태생이 정해준 계급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신분, 배경 상관없이 누구나 능력 있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적 가치관이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건 사회적 계층 이동성이 열려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능력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삼고 있는 자유 자본주의 사회를 긍정합니다. 능력주의의 역사적 의미는 세습적이고 폐쇄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분배했던 신분제라는 구습을 타파했다는 데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혁신의 이데올로기죠.

 

그러나 능력주의에 여전히 동일한 이미지가 씌어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능력주의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오늘날 ‘능력주의’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경쟁과 공정성, 나아가 엘리트리즘이죠.

 

과거 “능력주의”라는 말이 전달했을 뉘앙스는 굉장히 급진적이었을 겁니다. 혹여 입에 담았다간 “이보게, 큰일 날 소리 말게!”라며 주변의 뭇매를 맞았겠죠. 실제로 중국 후한 말 재상이자 왕이었던 조조는 출신을 막론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면 인재로 등용하는 구현령(求賢令, 210년)을 편 바 있습니다. 그 결과 유학자들의 집단 반발과 연이은 상소로 골머리를 앓았죠.

 

시대 및 체제, 사회 구조가 변하며 능력주의에 담긴 이념적 색채도 변하는 셈입니다. 과거 신분제 봉건 사회에선 폐쇄적인 지배구조와 가치 세습을 비판하는 진보적 이념이었다면, 오늘날 자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주의를 토대로 한 분배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기득권을 대변하거나 양극화를 조장하지 않는지 그 공정성을 검토하게 됐습니다.

능력주의의 뿌리

고대 그리스, 정치의 근간은 합당한 몫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능력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능력주의의 이념적 기원으로 ‘재능에 따른 출세'(career open to talents)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1789~1799)이 거론되곤 하는데요. 이전에도 능력주의에 대한 추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Suum cuique)

그리스 극작가 호머가 기원전 700년경 쓴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각자가 각각 소유해야 할 것을’ ‘각자 적격인 것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능력에 따른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는 표현이죠.

 

지난 화에서 언급하기도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적 정의론은 이와 같은 명제를 이론으로 발전시킨 움직임입니다. 각자에게 각자 어울리는 몫이 돌아가야 공정하며 정의롭다는 내용인데요.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개인의 능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은 절대적인 선과 진리를 추구하는 능력 있는 개인인 ‘철인왕'(Philosopher king)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 바 있죠.

 

미국, 능력주의 아래 작동하는 아메리칸 드림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능력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정립했습니다. 그는 재능 있는 이라면 누구나 사회의 엘리트층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죠. 귀족정이 사회를 좌지우지했던 구 유럽 대륙과 다른 미국을 꿈꾼 겁니다. 그러나 그가 인권을 보장한 ‘누구나’는 백인과 중산층 이상 남성이라는 결정적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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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

제퍼슨의 독립 선언서는 미국의 건국 이념과 민주주의의 토대로서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적·철학적 기원으로 꼽힙니다. 이외에도 양초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든 벤저민 프랭클린, 시골 태생 불후의 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 아칸소라는 변두리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됐던 빌 클린턴 등이 미국의 능력주의 신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아이콘으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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