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전쟁은 무조건 막아야 하는 일입니다. 힘을 겨뤄 누군가를 누른다는 것. 가혹한 일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이들의 갈등은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잘못 생긴 실마리가 세계를 두 갈래로 묶어 버리는 건 아닐까요.

이슈와 임팩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면전에 돌입했다. 러시아의 명분은 평화유지인데 속내는 점령에 가깝다. 사태의 진원지는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 친러시아 성향 지역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라는 게 러시아의 표면적 이유다. 이를 시작으로 전운이 드리워졌고 전면전으로 번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싸움으로만 끝나도 불행인데 세계가 둘로 쪼개질 상황이다. 제2 냉전체제의 그림자가 보인다.

명분 약한 전쟁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라는 지역에 자리한다.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스스로 국가 수립을 선포한 ‘자칭’ 국가다. 이곳 주민 다수가 러시아 국적이거나 러시아 혈통이다. 분리주의 세력이 우크라이나군 격퇴를 요청했고, 러시아가 군대를 투입해 독립 국가 인정에 나서면서 불꽃이 튀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두 공화국 정부에 대한 러시아의 상호협력과 지원을 약속했다. 평화유지군 파견도 결정했다. TV 연설에 나온 푸틴 대통령은 ’특별 군사작전’을 진행하겠다며 외국이 간섭하면 즉각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점령’은 계획에 없다는 게 푸틴 대통령의 말이지만 이 말은 공수표나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주권을 침해한 행위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 병력이 부딪히면서 전면전이 일어났다. 현지시간으로 27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인근까지 도달했다.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고 운명의 결전이 임박한 모양새다.

 

러시아는 무슨 이유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에 방파제를 쌓기 위한 목적이 깔렸다. 서방 세력이 러시아 인근까지 오는 걸 막겠다는 것.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된 세계 파워게임에 가세하려는 생각도 크다. 또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점령 세력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자신들도 독립하겠다며 우크라이나 정부를 향한 무장 투쟁을 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원 명목으로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이 민스크 협정을 위반했다는 점도 러시아가 말하는 명분이다.

 

  • 민스크 협정: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맺은 협정. 종전 협정 성격으로 프랑스와 독일이 중재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대신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이 자치권 보장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단단하지 못했던 우크라이나

“러시아인은 전쟁을 원하나? 답은 러시아 시민에게 달려있다.” —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돈바스 지역 분리 독립 승인을 주권 침해로 봤다. 예비군을 모으고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외국 대사관과 기업들을 비판했지만, 정부의 모습은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예비군 징집령을 발표하기 전날에는 “총동원령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물음표가 붙었다. 앞서 국경 지대에 러시아가 10만명 넘는 병력을 갖다 놨을 때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며 둔감하게 반응했다. 러시아군이 영토에 들어온 후에야 비로소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어쩔 수 없는 비애?: 사실상 전투력 자체로는 러시아와 비교가 안 된다. 서방의 지원이 없으면 힘의 크기로는 이길 수 없다. 약소국의 비애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믿었던 것도 패착이다. 하지만 사태 초반까지와는 다르게 국민 전체가 한마음으로 저항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전투복을 입었다.

 

  •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1994년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국가 주권을 보장받기로 한 내용의 문서다. 남아있던 구소련의 핵탄두를 러시아로 넘기고 미국-영국-러시아가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각서’일 뿐이라 협정이나 조약보다 강제성이 약하다. 구속력이 없어 어겨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쪼개지는 세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더 많이 점령할 근거를 만들고 있다. 이는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고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새로운 냉전체제의 분위기가 난다. 미국은 러시아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과 방위산업을 지원하는 특수은행인 PSB, 42개 자회사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사태에 대해  ‘침공’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다. 미국에 재산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는 푸틴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하는 상징적 행위다. 러시아 외무장관과 국방장관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유럽도 가세했다. 독일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직통 가스관 승인을 중단했다. 영국도 러시아의 런던 금융시장 국채 발행을 막기로 했다. 발행이 막히면 러시아의 자금 흐름이 경색된다. 과거 소련과 미국 간 냉전처럼 미국과 유럽이 다시 러시아 반대편에 서며 신냉전체제 초입에 발을 들인 모습이다.

 

특히 세계 경제에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대표적인 에너지 생산국이다. 우크라이나는 옥수수와 밀 등 주요 식량을 세계에 공급한다. 전면전이 지속되면 물가가 오르며 세계 경제 위기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제재’ 반대: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서방 진영의 기업 및 소비자가 피해를 볼 것”이라고 했다. 제제에 대한 공식 입장은 반대라고도 덧붙였다. 제대로 봐야 하는 건 중국의 저울질이다. 러시아에 경제적 제재가 가해지면 이들과 무역 규모가 큰 자신들도 타격을 입는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타산을 고려한 반응으로 보는 게 확률 높은 분석이다.

 

한국은 ‘곤란’: 우리는 러시아에 ‘자제’ 의견까지만 전달했다가 뒤늦게 제재에 동참하기로 했다. 결국 러시아가 전면전을 감행하면서, 미국과 수출 통제 참여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까지 얽힌 터,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해 골치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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