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38세의 실비아 홀의 한달 식품 구입비는 단돈 75달러(약 8만4000원)입니다. 유통기한이 다하기 직전의 떨이 상품을 할인가로 구입하는 것이 비결이에요. 출퇴근은 도보로 대신하며 넷플릭스는 친구 아이디로 접속해서 사용해요. 고소득 전문직인 실비아가 이렇게 극단적인 절약을 감행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원하는 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은퇴입니다. 실비아는 40세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그때까지 200만 달러를 모으기 위해 수입의 70% 이상을 저축하고 있는 중이에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소개한 미국 파이어족의 사례입니다.

◆파이어족이 뭐야? 40세까지 20억 벌기

파이어족의 ‘FIRE’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말이에요. 즉 경제적으로 자립한 조기 은퇴자란 뜻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조기 은퇴라고 하면 다소 안 좋은 이미지가 있는데요.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회사 사정에 의해 자리에서 밀려나는 뉘앙스가 강하다면, 미국 파이어족은 좀 다릅니다. 젊을 때 바짝 벌고 40세 이전에 자발적으로 은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예요.

 

파이어 운동이란 말은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어요. 타이트워드가제트라는 뉴스레터에서 최초로 사용한 후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게 됐다고 해요. 타이트워드가제트는 1996년 폐간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이어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파이어 운동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파이어 운동법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2011년부터 시작된 유명 파이어 블로그 ‘미스터 머니 머스태시’는 지난 10월 250만회가 넘는 페이지뷰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또 파이어 생활 팁을 알려주는 유명 팟캐스트는 지난해 업로드 이래 현재까지 190개국에서 520만회 다운로드를 기록 중이에요.

◆한겨울에 실내온도 12도! 파이어족의 극한 생활

파이어족의 주축은 밀레니얼 세대, 즉 1981~96년생이에요. 만 22세에서 만 37세, 그 중에서도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요. 파이어 운동의 핵심 개념이 ‘짧게 벌고 적게 쓰기’인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려면 고소득이 기본 조건으로 충족돼야겠죠.

 

파이어족들의 목표 금액은 저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100만 달러(약 11억3000만원), 어떤 사람은 200만 달러(약 22억 6000만원)를 목표로 합니다. 이처럼 큰 돈을 마흔 이전에 확보하기 위해 파이어족들이 쓰는 방법은 뭘까요? 그건 바로 극한의 근검절약이에요. 버는 돈의 50%에서 많게는 70%를 저축하는 것이 파이어족들의 생활 강령입니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파이어족의 사례에서 리킨스 부부는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있던 고급 저택을 팔고 집값이 싼 오리건주로 이사했어요. 몰고 다니던 BMW 자동차도 없애고 주 3,4회 하던 외식도 끊었죠. 이 밖에도 한겨울에 실내 온도를 12도로 유지하거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공짜 저녁을 먹기 위해 하루 14시간을 근무하고, 20년 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등 파이어족들의 생활은 자린고비가 울고 갈 정도입니다.

 

일단 목표 금액을 모으고 나면 주식에 투자하거나 은행에 예치해,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5~6%만 돼도 연간 5만~6만 달러(약 5600만원~6700만원)를 받아 생활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계산이에요. 미국인의 평균 연봉이 5만 달러 선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죠.

 

파이어 운동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 머니 머스태시’ 블로그의 운영자 피터 애드니는 30세에 은퇴할 때 이미 80만 달러(약 9억400만원)를 모아둔 상태였어요. 그는 이 돈을 투자한 뒤 연간 3만 달러(약 3400만원) 이하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자동차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레스토랑도 가지 않는 식이에요.

◆조기은퇴 열풍, 왜? “내가 원하는 삶 살고 싶어”

백세시대를 눈 앞에 둔 지금, 40세에 은퇴할 경우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일 없이 보낼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왜 조기 은퇴를 외치는 목소리가 이렇게 높은 걸까요. 앞서 말했듯이 파이어족들이 원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목표는 매일 쌓이는 직장 스트레스로부터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는 것이에요.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파이어족의 사례 중 의료장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칼 젠슨은 연간 11만 달러(약 1억2400만원)의 수입을 올렸지만 지난해 43세의 나이로 은퇴했어요. 업무 성격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돼 작은 실수도 허용되지 않다 보니 누적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 밖에도 직장에서 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가족과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더 큰 의미를 두는 이들이 파이어 운동에 동참하고 있어요. 아직 국내에는 널리 퍼져 있지 않지만, 삶에 지쳐 ‘탈 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높은 만큼 언제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겠죠.

◆파이어 운동, 정말 가능할까? 주의해야 할 점

40세 은퇴!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정말 가능할까요? 파이어 운동에 쏟아지는 비판도 많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무설계사 중 한 명인 수즈 오만은 한 인터뷰에서 파이어 운동을 언급하며 정면으로 비판했는데요. 그에 따르면 안정적으로 조기 은퇴를 하려면 최소 1000만 달러(약 112억8500만원)는 있어야 하며 그보다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파이어족들이 말하는 10억, 20억원은 “요즘 세상에선 푼돈일 수 있다”는 것이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파이어 운동의 위험성도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지출이에요. 특히 노년에 주의해야 할 가장 큰 함정은 의료비입니다. 아무리 목돈을 모아 놓아도 큰 병에 한 번 걸리면 물 새듯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거죠. 나이가 들면서 점점 큰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누구도 의료비라는 함정을 쉽게 비켜갈 수 없을 거예요.

 

무엇보다 파이어족으로 살기 위해 우선해야 할 것은 본인의 자산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에요. 파이어족은 은퇴 후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 어디에 투자할까 고민하기 보다 자산 현황 파악부터 제대로 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입니다. 내가 가입해 있는 연금 및 보험 상품은 무엇인지, 몇 살부터 수령할 수 있는지, 자산 및 부채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어요.

 

최근 종합자산관리 앱 뱅큐가 이용자 1638명이 이용하는 국내 은행 20곳의 1만3728개 계좌를 분석한 결과, 40대의 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연령대별로 보면 20대는 신용대출, 전세자금대출이 가장 많았고, 30~40대에 들어서면서 결혼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의 규모가 커지는 경향을 보였어요. 이처럼 자신의 생애 주기에 맞춰 지출을 예상하고 자산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파이어족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뱅큐는 고객이 사용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 보여주는 통합 자산관리 앱이에요. 자산 분석부터 소비 내역 및 보험 보장 내역까지 자산 조회 및 관리가 한 곳에서 가능하답니다. 또 사용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개인 맞춤형 금융상품을 추천해주기도 해요.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 때 행복감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것도 좋지만, 조기 은퇴라는 과감한 선택을 위해선 그에 앞서 명확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김민수
금융 칼럼니스트
"금융으로 통하는 세상, 세상에서 통하는 금융. 세상과 금융 이야기를 합니다."